조병, 대지를 주제로 한 개인전으로 건물을 붓 터치로 변모시키다
뿌리와 기억: 대지가 경력을 빚어낸 곳
서울의 BB&M 갤러리에서 베테랑 건축가 조병은은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자신의 창의적인 면모를 선보이고 있다. 바로 그가 설계한, 호평을 받은 건축물 뒤에 숨겨진 감각적 인상과 풍경을 담아낸 그림들이다. 서울에서 자랐지만 방학마다 가족의 고향인 상주 마을로 보내졌던 조 건축가는, 그 시골 방문들이 냄새, 들판, 그리고 처음 그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드러난 흙의 윤곽 등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고 말한다.
흙의 층위가 드러나 있던 묘지의 기억을 포함해, 땅과 물질성에 대한 이러한 초기 경험들은 나중에 그의 건축에 다시 나타나는 디자인 언어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작들이 탄생하기 훨씬 전에 제작된 작품들을 모아, ‘어스 하우스(Earth House)’나 ‘미움 하우스(Mium House)’와 같은 완공된 건물에서 나중에 드러나게 될 아이디어들의 시각적 아카이브를 제공한다.
‘막(Mahk)’ 시리즈: 재료, 과정, 그리고 창작의 자유
이번 전시의 핵심은 ‘마크(Mahk)’라는 제목의 최근 회화 작품군으로, 소박한 손으로 빚은 그릇, 달항아리의 비대칭성,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남긴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등 한국의 일상적 사물과 전통 공예의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 조 작가는 이러한 촉각적 참조점들을 흙, 질감, 그리고 재료가 기억을 담는 방식에 대한 더 넓은 관심사와 연결한다.
그림 속 색채 선택은 의도적으로 한국의 제사 건축을 연상시킨다. 전통적인 노록 안료에서 유래한 절제된 녹색과 석간주라 불리는 붉은빛이 도는 흙빛이 그것이다. 이 두 색은 종묘와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차분하고 절제된 색감과 그곳의 채색된 표면이 지닌 부드러운 위엄을 함께 암시한다.
조의 회화적 접근 방식은 신체적이고 반복적이다. 그는 흙을 물레 위에 올리는 동작과 연관 지어 원형 붓질을 구사한다. 이러한 흔적들은 도자기가 제작자의 손길을 기록하듯, 움직임과 우연을 기록한다. 별도의 전시실에는 초기 스케치와 학창 시절의 드로잉이 전시되어 있어, 얼마나 많은 구도적 아이디어가 실제 건축 프로젝트보다 먼저 탄생했고, 이후 프로젝트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여준다.
조 작가에게 예술 창작은 건축 실무와는 다른 조건을 제공한다. 건축 작품은 의뢰인, 예산, 실용적 제약과 타협해야 하지만, 캔버스는 순전히 직관과 신체적 제스처에 기반한 결정을 허용한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이 지닌 감각적 기원으로의 회귀이자, 수십 년간 공간을 형성해 온 후에도 때로는 타협 없는 창작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건축이 될 수 있음을 선언하는 것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