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버몬트까지: 한국 독립의 투사 호머 헐버트를 기리며
선교사, 교사이자 오랜 기간 한국 독립을 옹호해 온 인물
19세기 후반 한국에 온 미국인 호머 B. 헐버트는 교육가이자 한국의 자결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인물로서 주목할 만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관립 학교 중 하나인 로열 잉글리시 스쿨(Royal English School)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했으며, 이후 한글 입문서와 영어로 된 2권짜리 한국사 등 한국 내 및 한국에 관한 영향력 있는 저서들을 집필했다.
헐버트는 한국 왕실의 신뢰를 얻었고, 그 지위를 활용하여 해외에서 한국의 이익을 대변했다. 1900년대 초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자, 그는 한국 왕실을 대신해 워싱턴의 관리들과 국제 회의에서 호소 활동을 펼쳤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결국 수년간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그는 수십 년에 걸쳐 한국을 위해 로비 활동을 계속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1949년 한국으로 돌아온 헐버트는, 귀국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은 공개적으로 치러졌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드문 영예였으며 한국에서 열린 최초의 외국인 공개 장례식이었다고 전해지며, 많은 한국인들이 그를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서울에서의 추모식과 버몬트주 동상 제막식
최근 화개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있는 그의 묘소에서 헐버트가 서울에 처음 발을 디딘 지 1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헐버트 기념회가 주최한 이 행사에서는 1905년 워싱턴 파견 임무에 대한 발표가 있었으며, 그의 생애와 업적과 관련된 기록 자료들이 소개되었다.
이 행사에서 기념회 회장은 1949년 헐버트를 한국으로 다시 데려온 배 위에서 작성된, 헐버트가 남긴 마지막 편지라고 알려진 문서를 공개했다. 이번 기념 행사는 10월 3일 헐버트의 고향인 버몬트주 뉴헤이븐에서 절정을 맞이할 예정이며, 이곳에서는 한국의 건국기념일에 맞춰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조각가 권치규가 제작한 헐버트의 흉상이 기념비와 함께 제막될 예정이다.
양국에서 열리는 기념식은 헐버트의 이야기가 어떻게 더 큰 역사적 기억의 일부로 남아 있는지 강조한다. 즉, 식민 통치에 맞선 한국의 투쟁에서 외국 동맹자로서의 그의 역할, 교육과 학문에 대한 공헌, 그리고 이러한 유대를 기억하는 한국과 미국 지역사회 간의 지속적인 문화적 유대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