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과 침묵: 이배, 12세기 프랑스 수도원을 재탄생시키다
현대적인 목탄 작품을 위한 중세적 배경
한국 작가 이배는 12세기 건축물인 보리유앙루에르그 수도원(Abbaye de Beaulieu-en-Rouergue)의 복도와 회랑을, 목탄을 재료이자 의미로 삼은 신작들로 가득 채웠다. ‘En attendant’(프랑스어로 “기다리며”라는 뜻)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6월 25일부터 9월 30일까지 열리며, 프랑스 남부 지날(Ginals) 마을에 위치한 이 유서 깊은 장소 곳곳에 배치된 드로잉, 설치 작품, 조각 등 총 23점으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국립기념물센터(Centre des monuments nationaux)가 페로탱(Perrotin) 갤러리와 협력하여 기획했다. 수도원의 시토회 건축 양식과 고요한 공간은 이배 작가의 작품이 지닌 촉각적·색조적 특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배경을 제공하며, 관람객들이 공간을 천천히 거닐며 작품들이 빛과 침묵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음미하도록 이끈다.
12세기에 지어져 원래 시토회 소속이었던 이 수도원은 프랑스 혁명 당시 몰수된 후 종교적 기능을 상실했다. 20세기 중반, 미술 평론가 제네비에브 본네포이와 수집가 피에르 브라슈의 노력 덕분에 이곳은 현대 및 현대 미술을 위한 중요한 공간으로 재탄생하며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재료, 규모, 그리고 이번 전시가 중요한 이유
리는 30년 넘게 거의 전적으로 목탄에만 집중해 왔으며, 이를 변화 그 자체를 구현하는 매체로 여겨왔다. 즉, 파괴와 재생을 동시에 암시할 수 있는 불의 잔재로서 말이다. 이번 설치 작품에서는 이러한 아이디어가 규모를 통해 증폭되고, 석조 건축물과의 대화를 통해 더욱 돋보인다.
주요 작품으로는 본당을 따라 펼쳐진 25미터 길이의 목탄 작품과 10미터 높이의 청동 조각상, 그리고 이 장소에 맞춰 제작된 소규모 드로잉 및 조립 작품들이 포함된다. 이 작품들은 대성당의 비례, 변화하는 빛, 그리고 내부 공간의 고요함과 조화를 이루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시간, 기억, 물질성에 대해 성찰하도록 이끈다.
이번 전시는 국제적으로 명성을 높여가고 있는 리 작가의 또 다른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12월 6일까지 중국 헤 아트 뮤지엄(He Art Museum)에서 전시 중이며, 한국 원주의 뮤지엄 산(Museum San)에서는 개인전이 열리고, 10월 아트 바젤 파리(Art Basel Paris) 기간에 맞춰 파리의 페로탱(Perrotin Paris)에서도 개인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역사 깊은 기념물 안에 현대적이고 물질성이 강렬한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적 목소리가 어떻게 역사적 장소를 되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시금 작품을 품은 장소로부터 어떻게 깊이를 얻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